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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시스템 만든 게임 개발자가 ‘클라우드’에 빠진 이유

바이라인네트워크 2019/07/27
여기 신기한 사연을 가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 그러니까 창고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중소기업 대표입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신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경력 대부분은 게임업체입니다. XL게임즈, 위메이드, 트리거소프트 등지에서 10년 이상 게임 기획 및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3PL업체를 차려 3년 간 경영을 하더니 이제는 창고관리 시스템 업체를 차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게임업계는 하드코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 때 판교밸리 너머에서 밤을 밝히던 등대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유명한 업계이기도 하죠. 게임이 잘 된다면 모를까. 안 된다면 팀 단위로 정리가 되는 일은 게임업계에서 왕왕 있어 왔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그런 생활에 신물이 났다고 해야 할까요. 그는 우연한 기회에 선배의 제안을 받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으로 유명한 반디앤루니스가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고 있었거든요. 물량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시스템’이 필요했고, 이상하게 반디앤루니스는 게임업계 출신인 그에게 WMS 개발을 맡기게 됩니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물류센터의 하루 최대 출고량(생산성)을 크게 늘릴 수 있었고, 인건비도 절감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성과를 낸 사업이면 그 분야에 흥미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물류 경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그도 물류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3PL업체 창업까지

WMS 개발 프로젝트를 마친 그는 3PL(Third Parties Logistics) 업체를 창업했습니다. 자본금이 별로 없어서 150평 규모의 작은 창고를 하나 임차했죠. 3PL업체를 창업하기 전에 확보한다면 무조건 좋은 것은 역시나 물량입니다. 백지 상태로 물류센터를 임차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마음 졸이는 일이잖아요. 영업이 잘 안 될 수도 있는 노릇이고요. 그래서 많이들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군가에게 물량을 약속 받고 3PL업체 창업을 합니다.

그도 비슷했습니다. 그는 지인의 지인을 통해 의류 홈쇼핑업체 담당자를 소개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 업체의 물량을 처리한다고 한다면 최소한 6개월에 1억원 정도의 매출은 깔고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면 창업도 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이었는데, 오산이었죠.

그의 150평 규모 창고로는 홈쇼핑 업체의 물량을 처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홈쇼핑업체가 그에게 맡기고자 했던 상품은 ‘모피코트’였다고 합니다. 보관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품목이죠.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인데 컨테이너로 한국에 들어와 3PL업체 물류센터에 들여놓고, 방송이 나오는 그 날 포장까지 끝내서 홈쇼핑업체 물류센터로 보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홈쇼핑업체가 방송 날짜를 여유 있게 잡아서 알려 주는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물류를 잘 몰랐던 그는 짧은 시간에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력으로 업체가 요구하는 납기를 맞추기엔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결국 홈쇼핑업체로부터 받은 물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 수십개 정도 출고되는 물티슈가 전부였다고 하니, 본의 아니게 백지 상태 물류 창업이 된 것입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의 물류업체는 성장했습니다. 잘 나갈 때는 70개 정도 고객사가 하루에 4000~5000개의 물량을 출고할 정도로요. 그는 지난해 6월 이 업체를 매각합니다. WMS 업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PL업체의 이름은 ‘901기지’였습니다.


WMS의 탄생

그렇다면 그는 왜 갑작스레 WMS 업체를 창업한 것일까요. 한국의 3PL업체들은 많이들 외부에서 WMS를 사와서 사업을 합니다. 물류 운영은 3PL업체가, 시스템 개발은 IT업체가 하는 것이니 당연히 서로 다른 역량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또한 처음 3PL업체를 시작했을 때는 외부에서 WMS를 구매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걸. 시스템이 너무 비싼 겁니다. WMS 업체를 찾아가니 기본 3000~5000만원 이상의 비용을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의 입장에서 3000만원 돈이면 창고 하나를 더 얻어서 빌려야지 시스템에 투자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돈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는 시스템을 직접 만듭니다. 개발자 경력이 있고, WMS 프로젝트를 맡았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이 때까지 시스템을 별도로 판매할 생각을 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운영하는 3PL업체에서 시스템이 필요해서 만든 것입니다. 근데 생각보다 고객 반응이 좋네요? 시스템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사가 추가로 들어오기도 하고, 몇몇 고객사는 “이 정도면 팔아도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그에게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가 WMS 업체를 창업하게 된 배경은 여기에 있는데, 고객사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그의 시스템이 가진 특별함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3PL을 하면서 만난 고객들, 그리고 ‘정물일치’

그가 3PL업체를 경영하면서 만난 고객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었습니다. 하나는 혼자서 어떻게든 물류를 처리하다가 도저히 안 돼서 3PL 업체를 찾는 경우. 이 경우 문제는 SKU(Stock Keeping Units)에서 나왔습니다. 제품종수가 적었을 때는 건물 지하 창고에 마구잡이로 물건들을 쌓아놓고, 어떻게든 사람을 써서 닥치는 대로 포장하고 출고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제품종수가 많아지니 도무지 내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어디 구석에 박혀 있다가 습기가 차거나 곰팡이가 생겨서 버리는 상품도 나오게 됩니다.

또 다른 유형은 다른 3PL업체를 쓰다가 업체를 바꾸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 이들이 겪은 가장 많은 문제는 ‘재고 불일치’였다고 합니다. 물류의 영원한 숙제라고 하는 전산 재고와 실물 재고가 일치하지 않는 그 문제를 호소했다는 것이죠. 사실 두 고객 유형이 호소하는 고민은 모두 전산재고(정보)와 실재고(물건)의 일체화, 그러니까 ‘정물일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물류 시스템의 본질은 여기에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쉽게도 ‘정물일치’를 해결하는 명확한 방법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WMS 또한 완벽한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못합니다. 물론 사물인터넷과 RFID를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기술을 넣으면 뭔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을 모든 상품에 적용하기에는 돈이 많이 들겠죠.

그가 말하는 ‘정물일치’를 최대한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창고 안에서 일어나는 작업, 그러니까 입고와 출고를 정확하게 하도록 시스템이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게 된다면 창고 안에서의 분실, 파손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보와 실물의 불일치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우는 시스템의 경쟁력이 있으니, ‘클라우드’입니다.


클라우드의 조건 ‘모듈화’

클라우드라서 좋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듈화’. 그는 WMS 사용자인 창고업체의 업무 프로세스에 따라서 15~20개의 모듈을 만들어서 시스템에 녹여놨습니다. 3PL업체들은 입고관리, 재고관리, 출고관리 등의 영역에서 자사의 운영 방식에 맞는 모듈을 선택해서 곧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입고에서는 리스트를 불러놓고 수기로 수량을 입력하는 방식, 상품 바코드 확인 후 수량은 사람이 손으로 세서 입고하는 방식, 전체 상품을 바코드로 찍어서 입고시키는 방식을 모두 지원합니다. 출고에서도 마찬가지로 완전한 바코드 검수 출고와 육안으로 출고하는 방식을 모두 시스템이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단품과 합포장을 구분하여 출고하거나, 특정 상품을 주문한 건만 먼저 출고 지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3PL업체들이 전산, 그러니까 바코드 기반의 물류 데이터 처리가 아닌 ‘까대기’ 중심의 물류를 하고 있습니다. 출고 작업을 할 때 상품 바코드를 일일이 찍지 않고 한 번에 피킹해서 전산에 수기로 입력하여 일괄 차감하는 방식을 예로 들을 수 있겠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대세라고 하더라도 이런 업태를 시스템 사업자가 부정하면 안 되는 것이죠. 까대기 물류센터부터 꽤 많이 전산화된 물류센터까지 사용자의 업무 방식에 맞춘 여러 모듈을 제시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재고관리 또한 ‘고정 로케이션’과 ‘멀티 로케이션’, ‘로케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 각 업무 방식에 맞춘 기능을 지원합니다. 로케이션이란 특정 상품을 보관한 장소를 시스템에 지정하여 관리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여기서 고정 로케이션이란 말 그대로 특정 상품을 ‘정해진’ 장소에 입고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때 출고 장소는 정해진 그 장소가 되겠죠. 반대로 멀티 로케이션이란 입고자가 아무데나 상품을 입고시키더라도 그 장소가 시스템에 보관 장소로 시스템에 저장되는 방식입니다. 출고 장소는 입고자가 아무데나 보관한 그 장소가 되겠고, 시스템은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작업자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쿠팡의 랜덤스토우(Random Stow)가 멀티 로케이션 방식이라 볼 수 있겠군요. 요즘 신선식품 이커머스 업체에서는 뜨거운 감자인 ‘유통기한에 따른 재고관리’ 기능도 지원한다고 합니다.

물론 기존 그의 시스템이 제공하는 모듈만으로 창고업체의 니즈를 해소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그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 고객사 중 하나인 ‘팀프레시’는 새벽배송을 포함한 신선식품 3PL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업체인데요. 기존 상온 물류와는 프로세스가 달라서 당연히 그에 따른 커스터마이징을 하고 도입을 했다고 합니다. 커스터마이징은 시스템을 구매하는 3PL업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라면 ‘무료’로 업데이트를 해주고, 만약 독자적으로 한 업체만 사용할 것 같은 기능이라면 별도의 금액을 받고 진행합니다.


클라우드의 조건 ‘유연성’

클라우드의 핵심은 서버 자원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서버로 운영하다가 일정 사용량에 도달했을 때 서버 이전을 하는 것이 아닌, 서버를 유동적으로 계속해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 강점입니다. 물류의 경우 성수기와 비수기의 물량 편차가 존재하고 할인 행사 등 이벤트에 따라서 물량이 폭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클라우드 서버를 사용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합니다. 그가 과거 경험했던 것처럼 수천만원에 달하는 구축형 WMS가 부담스러운 업체에게도 클라우드 방식의 시스템은 환영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스템은 ‘완전한 종량제’, 그러니까 유연하게 물류 서비스를 사용한 만큼 금액을 지불하여 이용할 수 있습니다. 3개월 무료 사용 기간 이후 출고량, SKU, 로케이션수, 추가계정수, 화주사 계정수 등이 반영돼 최소 월이용료 2만7500원부터 사용료가 결정되는 개념입니다. 만약 하루 출고 500개 이하, SKU 100개 이하의 업체라면 3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월 2만건 정도 출고하는 업체라면 한 달에 25만원, 5만 건 정도 출고하는 업체라면 50~60만원 정도를 시스템 이용료로 지불한다고 합니다.

완전한 클라우드 방식만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물량 이상을 처리하는 업체라면 ‘단독 서버’에 시스템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월 10만개 이상을 출고하거나 3만개 이상의 SKU를 다루는 업체라면 클라우드 서버형보다는 ‘단독 서버’ 구축을 추천한다고 합니다. 이 경우 여러 기업과 서버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서버를 할당하고, 사용량에 따른 변동비가 아닌 월 고정비를 시스템 사용료로 지불한다고 합니다. 서버를 단독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합니다.

IT, 유통 등 이종산업이 경계를 넘어 물류산업에 진입하는 시대입니다. 그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이력을 가진 사람들도 하나둘 나오고 있죠. 그리고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이 내세우는 경쟁력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발상과 방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 개발자에서 물류업체 대표로, 그리고 창고관리 시스템에 클라우드를 붙이기까지. 그의 이름은 임수영. 스페이스리버의 대표입니다. 공간(Space)의 흐름(River)을 만든다는 조금은 은유적인 이름을 가진 업체죠.


바이라인네트워크
https://byline.network/2019/07/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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